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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

간병 일지 1

--++- 2024. 8. 29. 20:43

아버지 간병 중이다. 

갑자기 간병을 하게 되면서 모든 삶이 바뀌었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내가 이렇게 있을 줄 몰랐는데 삶이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거구나.

 

 

어릴 때 나는 고민이 많았는데 그때도 머릿속에서 여러 걱정거리가 가득했는데

지금 이 시점에 돌아보면 그때 그 걱정들은 큰 걱정이 아닌 편에 속한 게 아닌 거 같다.

진로, 친구 이런 문제들

 

아버지가 아프시고 내가 간병을 하게 되니 그런 평범한 일상의 고민들이 그립다.

 

나는 욕심이 많고 바라는 게 많은 사람인데

지금은 그냥 평범한 일상만이 그립다.

사람은 자신의 상황이 기준점이 되어 그에 맞추어 행복의 기준이 바뀌는 듯하다.

 

그냥 뭐라도 쓰고 싶어서 써 본다.

 

 

#1 소녀 아주머니

내가 있는 병실은 상태가 좀 심각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옆 침대 아주머니는 아저씨가 누워서 말씀도, 움직이지도 못하신다. 좀 오래되신 거 같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내가 들어온 첫날 남편 자랑을 했다.

너무 착해서 모든 동네 사람들 그리고 처남들이 정말 좋아했다고.

아주머니 자랑은 사실인 거 같다.

아주머니는 한 번도 찡그리지 않고 매번 밝은 얼굴과 목소리로

"아저씨(자신의 남편을 지칭)~ 오늘은 기분이 어때~ " 하면서 말을 걸면서 웃으며 이야기하신다.

 

나는 아직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아빠에게 밝고 무조건적으로 잘하자 해 놓고 

며칠 만에 성질을 냈다.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저 아주머니는 어쩜 저렇게 하실까.

지켜보니 아주머니는 아저씨에게만 잘하는 게 아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다정하다.

어찌 보면 살짝 푼수끼(나쁜 표현이 아닌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푼수라는 표현을 한다)가 있어 보이는데

아니다, 소녀 같다는 말이 더 맞겠다. 아직도 세상이 궁금한 밝은 소녀 같은 모습이다.

 

덕분에 방 분위기가 좋았다. 아주머니의 긍정 에너지는 지친 간병인들에게 힘이 된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주머니는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남에게 나누어 주신다.

병실 사람들뿐 아니라 동네 사람들에게도 그런 거 같다.

나는 계산적인 사람이라 뭘 줘도 나중에 그만큼 안 돌아오면 머릿속에 나만 고생한 거 같고, 나만 더 준 거 같다는 계산기가 자동으로 돌아가는데 안 그런 사람도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이건 닮고 싶다고 되는 건 아닌 거 같아 저 아주머니의 빛나는 재능처럼 느껴진다.

 

옆 아주머니가 그런 분이라 참 좋았는데 이제 아저씨 병원에서 뭘 해주실 게 없으신지 집에 가서 관리하신다고 한다.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요양원에서 자꾸 전화가 오는데 절대 못 보낸다면서

"우리 아저씨 욕창 잘 생기는데 절대 안 돼"하면서 말씀하시는데 절대 안 보내실 분이 맞다.

 

긴 간병 생활을 하면 아무리 결심해도 환자에게 짜증을 안 내는 게 어려운 거 같은데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저렇게 하는 분을 처음 이웃으로 만난 건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그 아주머니를 보며 처음에 간병을 시작하며 내 모든 행복이 다 사라진 거 같다는 생각을 한 게 내가 작은 인간이라 그런 거 같다. 아주머니는 어떤 환경에 있어도 늘 행복할 거 같다. 동심이 가득한 사람은 행복한 거 같다. 이 소녀 아주머니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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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비슷한 상황의 이에게 의지가 되고 싶다. 

누군가와 서로 의지하고 싶다. 나와 비슷한 또래 친구를 여기서 만나고 싶다. 

우선은 나를 위해서겠지만 그 못지않게 나도 그 사람을 위해서 힘이 돼주고 싶은 마음도 크다. 들어주고 싶다.

예전에 읽은 책 중에 제목이 도저히 생각이 안 나는데 간병인지 치매인지 어떤 질환에 대해 돌보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또 다른 누군가들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그때는 그냥 그렇구나 싶었는데 내가 막상 겪어 보니 그 책이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거였다 싶다. 근데 왜 제목이 생각이 안 날까? 기록해 둔 거 키워드로 검색해도 안 나오는데 기필코 찾아내고 말 것이다.

간병 관련 카페도 있다고 하는데 거기 보면 다 같이 우울의 늪에 빠지는 거 같다고 한다. 그냥 이 일 속에서 서로 웃음을 찾으며 의지하며 보내고 싶다. 가볍게 웃으며. 

지금 내가 이렇게 주저리 쓰는 것도 어쩌면 어딘가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3 나의 자만

나는 운동을 꾸준히 갔다. 그게 오래되어 나의 대단한 자부심이었다.

나는 뭔가를 꾸준히 할 줄 안다는 것에 으쓱해했다. 그렇다고 몸이 좋은 것도 아닌데 그냥 출석 잘한다는 자신감 ㅋ

근데 예상치 못하게 간병으로 다른 지역에 내려와 강제로 몸이 묶여서 생활하니 내가 늘 규칙적으로 잘 생활한다고 자신하던 게 반성된다. 내가 잘한다는 그 자신 뒤에는 누군가는 그렇게 못하겠지? 하는 마음도 있었던 거 같다.

그런데 내가 간병을 하니 모두가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선택지가 없을 수도 있다. 누군가는 하고 싶어도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수도 있겠다.

모두의 환경이 같지 않다.

 

 

#4 인간의 규칙, 존엄?

아무것도 아니다. 규칙도 존엄성도

환자 보호자가 서로 성별이 같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러다 보니 남녀 화장실이 구분되어 있지만 거의 같이 쓴다.

휠체어 칸이 가장 안쪽에 있어서 서로 그냥 다닌다.

그렇다고 아무 문제 없고 신경 쓰지 않는다. 서로 살기 바빠서.

대소변을 못 가리는 이도 많고 커튼은 치지만 전쟁 같을 때도 많다. 

밖에서는 수많은 규칙과 깔끔하게 서로 예의 지키며 살지만 이 공간 속에서는 그 모든 것들이 허물어져 그저 살기 위해 애쓴다. 벽 하나를 두고 이렇게 서로 다른 삶을 산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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